찬송가 538장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오신 후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아닌,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치유 이야기는 8장에서 보았던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병든 하인을 고치신 이야기와 맥락이 통합니다. 병든 당사자의 믿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믿음으로 환자를 고치신 특이한 상황입니다. 믿음이 일으키는 은혜의 지경이 믿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도 은총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면, 이런 겁니다.

즉, 나의 믿음의 기도가 아직은 믿음이 없는 내 가족이나 이웃들을 위해서도 은혜를 끼치게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하실지 다 알지 못하지만, 그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기도를 계속 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환자를 고치실 때 ‘죄사함을 선포하신 것’ 때문에 주변에 있던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행위를 신성모독이라고 속으로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주님은 왜 그들의 생각이 악하다고 하신 것일까요? 13절과 연결해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3절의 말씀을 하신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으시고 세리들과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비난하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왜 당신의 스승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느냐?’고 따진 것입니다. 이것은 세리들과 함께 식사한 행위를 비난한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들으신 주님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다’라고 답변하십니다.

그런데 13절 앞부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을 향해,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호6:6) 고 하나님이 호세아서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워오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성경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향해 호세아 6장 6절의 의미를 다시 배워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안다는 것은 그 삶에 사랑과 긍휼의 열매가 더욱 풍성해지는 증거가 있어야함에도 그들에게는 그와 같은 긍휼은 담겨 있지 않고 그저 문자적 지식만 채워져 있는 것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그 마음이 하나님을 닮아가서 긍휼과 자비가 더욱 풍성해져야 정상인데, 여전히 자기 자아와 고집으로 가득한 이들이 있습니다. 실제적인 말씀의 열매가 없어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수록 자비와 긍휼이 넘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만 늘었다면, 그건 악한 것임을 우리로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와 여러분 ‘선하다’고 주님으로부터 칭찬 듣는 성도로 성장해 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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