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6  금  막9:30-37  463장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향해 가셨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시는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가르치시는데 집중하시기 원하셨고, 제자들도 배우는데 집중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래도 군중들이 동행하면 지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가운데 당신이 수난 당하실 것에 대한 예고도 하셨습니다. 배반을 당하고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당할 것이라는 말씀, 그리고 3일 후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그 말씀을 듣는 제자들은 말씀의 내용이 너무 무서운 것이어서 의문이 들어도 누구하나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신도 그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어떤 질병이든 그분의 능력으로 다 고치실 수 있는데, 누가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에게 고난을 주고, 주님을 죽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들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묘합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제자들은 다른 생각과 욕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에 도착한 뒤에 예수님이 오는 길에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자기들끼리 논쟁했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누가 더 큰 지에 대해 논쟁하였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찔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어떤 문제로 논쟁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은 그것에 대해 잊어버렸는지, 누가 더 큰지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실 때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까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욕망이 제자들 사이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생각 사이에 아주 큰 간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앉혀놓고 다시 가르침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고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제자도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과 더불어 예수님의 제자도의 핵심이 오늘 말씀 35절입니다.

우리들도 머리로는 다 아는데 행동으로는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끝으로 내려가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있는 자는 과시하려고 하고, 아는 자는 자꾸 남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힘이 센 자는 약한 자를 부리려고 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아랫자리에 있는 자를 함부로 대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힘듭니다.

그것을 뒤집는 것이 교인들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끝으로 내려가 섬기는 것이 제일 어려울 것입니다. 이래저래 훈수하고, 지적하고, 자신의 헌신만큼 따라하지 못하면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들이 교회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목회자, 장로, 권사 와 같이 직분 있는 이들이 끝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직분이 높을수록, 신앙의 연륜이 오래될수록 말을 적어지고, 섬김은 깊어져야 교회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기왕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보겠다고 결단한 여러분들의 삶이 그리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어찌하든지 우리는 자원하여 끝으로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그 끝에서 주님을 만나 뵙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 주님이 높여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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