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자 무리 중에 어떤 자들이 예수님이 귀신의 왕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는다고 모함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기적들은 상식을 넘는 일이었고, 놀랄만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그같은 기적의 경험들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예수가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더 분명한 표적을 보여 달라는 말입니다. 표적이나 기적에 집중하는 자들은 그 기적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려고 하는 것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저 더 크고 신기한 현상들을 추구할 뿐입니다. 이들도 자신들의 놀라운 경험을 믿음으로 이어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 모두 예수님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이런 행위는 예수님을 방해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 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라는 언급은 바로 이런 자들을 가리키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뒤에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귀신들림에서 벗어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귀신이 떠나간 그 자리에 더 악하고 강한 귀신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 부정하고 악한 것이 떠나거나 그것들을 버린 후 그 안에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채워야 할 새로운 것은 사실 어제 읽은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귀신과 같이 추하고 부정한 것들이 떠난 우리의 내면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귀신이나 다른 것들이 주인 노릇을 하였지만, 이제는 성령께서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비우기만 한 상태로 내버려두면 더 큰 귀신이 들어와 이전의 형편보다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게 채워지는 것입니까? 우리가 성령을 우리 마음대로 채울 수가 있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 뒤에 주신 말씀에 힌트가 보입니다.

27절 보면, 무리 중에서 한 여인이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습니다”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힌트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우리 내면에 하나님의 뜻을 채워가면서 그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성령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을 그렇게 살고자 할 때에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고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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