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장 29~36절 2월 10일 목요일
오늘 말씀은 앞의 16절 무리 중 어떤 이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한 것과 연결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 요나를 언급하시면서 당신이 보여 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앗수르의 성읍 니느웨를 향해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다시스로 가려다가 바다에 빠져 물고기에게 삼킨 바 됩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낸 후 하나님이 그를 꺼내셨습니다. 그후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했는데, 예상외로 니느웨 사람들이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갔습니다.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이유는 요나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되면 그것이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가 니느웨 성읍 사람들에게 대속의 통로가 된 것처럼 주님이 이 세상에서 대속의 주로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나가 회개를 선포했을 때 이방인인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요나보다 크신 존재라고 언급하십니다. 요나보다 큰 존재이신 당신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판 때에 더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 32절의 말씀이 그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왕과 남방 여왕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의 여왕인 시바는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많은 보화를 가지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보다도 크신 주님이 참 지혜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사람들이 들이 주목하여 듣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방인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이 비유는 유대인들의 신앙적 무관심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영적으로 둔감하여 진 것일까요? 그들은 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인가요? 다시 29절로 돌아가 보면 예수님이 당시의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지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토록 악해진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 이유를 34절에서 ‘눈’과 연결하여 설명하십니다. ‘눈이 성하다, 눈이 나쁘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눈은 보는 기관입니다. 유대인들은 눈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본다는 말은 욕심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이 성하다’는 말은 ‘욕심이 없다’는 것과 연결되고, ‘눈이 나쁘다’는 말은 ‘욕심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말도 욕심과 그 사람의 인생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고, 온 몸이 밝을 것이라는 것도 온 안생이 행복할 것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눈이 나쁘면 온 몸도 어두우리라’는 말씀은 “욕심이 많으면 인생이 힘들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욕심이 과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세대가 된 것이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게 된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탐심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그들의 인생을 괴롭게 할 것이며, 탐심에 의해 회개의 선포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고 주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심판은 매우 엄중할 것임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표적을 구하기보다 우리의 눈이 성한지 아닌지를 먼저 살필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