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바로 앞절에 보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연계해서 오늘의 본문을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염려, 근심, 무서움’을 언급하시면서 이 단어들에 대해서는 뒤에 ‘~하지 말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염려하라’, ‘근심하라’,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성경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단 한 차례도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 그 단어들인데 왜 우리는 그렇게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할까요?

그림자처럼 우리 삶에 달라붙어 있는 것인양 자주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그 내용들이 ‘어떤 음식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라는 먹고 사는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도 그것의 중요함을 아시기에 주기도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성이 더 앞서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뭘 먹지, 뭘 입지’라는 생각이 지나쳐 그런 것들이 마치 우선순위에 가장 앞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덜 중요한 것에 더 마음을 쓰는 삶에 대해 주의할 것을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전반부 말씀에서 주목할 구절은 27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누렸던 영화가 백합화 한 송이만큼도 못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영화는 수많은 인류가 부러워하고 누리고 싶어 했던 것인데, 겨우 꽃 한 송이가 그보다도 못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솔로몬이 누린 그 모든 영광은 어떻게 얻은 것입니까?

하나님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게 하신 지혜를 통해 얻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삼았고, 이방의 우상들을 이스라엘 안에 심어두었습니다. 지혜를 통해 얻은 보물들로 사치를 행했고, 왕궁과 왕궁의 보물들을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백합화 한 송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꽃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햇빛과 비를 쬐고 마십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피우도록 창조하신 그분의 섭리를 따라 잎을 내고 꽃을 피웁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지고 다시 핍니다. 그러니 자신의 욕망으로 이룬 영화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꽃을 피운 백합화가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입니다.

31절에 주님은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을 나눠 구제하는 것입니다. 33절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의 것을 나누어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얻는 길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길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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