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은 예수님이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앞 절에서 부자들을 식사자리에 초대하지 말고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몸이 불편한 이들, 맹이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갚을 길 없는 그들 대신에 하나님이 갚아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누군가가 “하나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들으신 주님이 오늘의 비유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잔치할 시각에 초청한 사람들에게 종들을 보내어 “오십시오. 잔치 준비가 끝났습니다.”라고 전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청함 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합니다. 모두 참석하지 못할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하며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다 준비된 후에 거절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그들이 거절 이유로 제기한 것들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할 중요한 이유도 아닙니다. 이는 그 주인을 가볍게 여긴 행동입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주인은 크게 화를 내며 종들에게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들, 맹인,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치 자리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길이나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잔치 자리를 채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에 초대하였던 자들은 한 사람도 자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그 식사 자리에서 주신 가르침입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종들은 선지자들을 상징합니다. 처음 초대받았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거절한 이들은 예수님이 앞서서 언급했던 ‘부한 이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부한 이웃’은 현재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복음을 증거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무리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것처럼 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 나라의 출세와 성공을 더 즐기려는 욕망이 더 강한 사람들이었음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행위 속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크게 노하셔서 당신의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더불어 나중에 잔치자리에 참석하게 된 가난한 자들, 몸이 불편한 이들은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응하며 주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를 적극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길이나 산울타리 건너에서 강권하여 데려온 사람들은 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거나 아마 이방인을 상징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들도 애초에 아예 자격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보내 잔치에 참석하라고 권유해도 ‘우리 같은 자가 어떻게 참석할 수 있겠느냐’며 거절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강권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잔치를 마음껏 맛보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된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 비유는 애초에 잔치자리에 주역으로 초대되었던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이 잔치 참석하기를 거부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유대의 낮은 자들과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가 전해질 것이라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 속 어느 자리에 속해 있을까요? 바라기는 두 번째, 세 번째 초청받아 은혜로 잔치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 거기에 깊은 감사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잔치의 즐거움을 늘 맛보는 축복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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