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도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듯 이스라엘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의 왕국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짚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너희 안에’는 ‘너희 가운데’ ‘너희 중에’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끔 ‘너희 안에’를 ‘너희 마음에’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하면 한 가지 걸림돌이 생깁니다. 여기서 ‘너희’란 제자들만이 아니라 질문한 바리새인들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바리새인들 너희 마음 안에 있다’고 해석하게 되는데, 이건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 안에’라는 말을 다르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대화를 주고받는 현장에는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계신 모양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 ‘너희 가운데’ 있는 존재가 누구일까요? 그 존재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들 안에, 그들 중에, 그들 가운데 있는 존재는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함께 있다는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인자의 날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은 그 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번개처럼 언제일지 어디인지 모르게 갑작스럽게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인자의 날은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게신 곳에 있습니다. 거기서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어찌 보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의 삶 속에 드러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우리 시대든 다음 어느 시대든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인자의 날에 누가 그분을 영화롭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때 누가 영생의 부활에 이르게 되겠습니까?

32절에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결국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애쓰라는 말씀이며, 결국 그들이 인자의 날에 주를 영화롭게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잃는 자는 살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얻지만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노아시대와 롯 시대를 언급하시면서 그 시대 사람들은 심판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살다가 구원에 이르지 못했음을 상기시킵니다. 인자의 대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방주를 준비하던 노아를 비웃으며 자기 욕망에 이끌려 살다가 심판을 당했듯 인자가 다시 오시는 때에도 그런 일들은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구원받았듯 세상이 어찌하든지 주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믿음과 사랑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자는 인자의 날에 때에 데려감을 당할 것입니다. 노아와 롯 시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데려감을 얻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