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이스라엘의 몰락에 관한 예언인데, 몇몇 구절들은 세상의 마지막에 있을 징조가 아니겠느냐 하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21장 본문 자체가 그런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으로 읽었지만, 오늘 우리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마지막 때에 임하는 징조와 그에 대비해야 하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한 말씀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본문입니다.

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오늘의 본문에서 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요? 누가는 환란을 당하게 되는 성도들이 그 환란을 어떻게 지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28절을 보면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 환란의 징조들이 일어날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속량(구원)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여러 환란과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것은 속량,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싸인(sign)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34절에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십니다. 스스로 주의하지 않으면 ‘그날’이 덫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36절에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장차 올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그 날’이 덫이 되지 않고 속량이 되게 하려면 항상 기도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까?

37절과 38절이 그 답을 주십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를 깨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 안에 살며 깨어 있어 기도하는 것만이 그날을 덫이 아닌 속량으로 맞이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도 기도 가운데 말씀을 붙들고 깨어 있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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