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장 1~13절 3월 17일 목요일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구원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니산월 14일이고, 그 다음날인 15일부터 한 주간 무교절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온 민족이 감사하고 기뻐하는 절기에 민족의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생명의 절기에 종교 지도자들이 누군가를 죽이려는 모의를 꾀하고 있었다는 점이 참으로 모순적입니다.
종교와 신앙이 자신의 삶의 토대를 이루지 못하면 결국 위선과 가식만이 남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종교지도자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누가는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한 것에 대해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유대의 문학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작정한 것은 유다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실망한 유다는 사탄의 유혹에 걸려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왔으면서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왜일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가룟 유다만이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에 대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일까요?
나의 욕망에 예수님이 반응해주지 않으실 때입니다. 내 욕망을 채워주지 않으실 때 우리는 주님에 대해 실망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사탄에게 넘어질 아주 위험한 시기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시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유다만 실망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크게 한 자리 차지하려는 욕망이 있었던 것을 보면 다른 제자들도 주님께 실망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신은 유다만이 합니다. 베드로는 부인하였다가 회개하지만, 유다는 주님께 용서받을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면서 영원히 배신자의 낙인을 쓴 채로 그 이름이 기억되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께 실망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실망의 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시 진정한 신앙의 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에 대해 모두 채워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욕망이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욕망을 채워주기만을 바라는 신앙은 반드시 꺾이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진정한 성도는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자리에서 주님을 뵈어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내 인생을 향하신 우리 주님의 뜻을 거기서 발견할 때 우린 욕망에 이끌려 살지 않고 성령에 이끌려 사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