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붙잡히실 때 모든 제자들은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멀찍이 떨어져서 주님을 붙잡은 일행을 따라갔습니다. 일행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집 뜰에 앉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불을 쬐고 있었는데 한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봅니다. ‘이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예요.’

그러나 베드로는 즉시 부인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그를 알지도 못해.’ 그러나 조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너도 그와 한패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이번에도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난 아니야!” 라고 즉시 부인합니다. 점점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베드로는 그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기왕 부인했으니 어서 피했어야 하는데 베드로는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 그 이후로도 한 시간이나 그 자리를 지킵니다. 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을까요? 말로는 나는 예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 말하면서 그 자리를 뜨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미련이 남은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베드로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다른 이들이 알아볼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차마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조금이라도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그런데 3번째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그는 이전의 두 사람과 달리 아주 확신에 차서 장담하며 말합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저 자도 예수와 한패입니다. 확실합니다. 이 사람도 갈릴리사람입니다.” 이번엔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베드로의 말에도 힘이 실립니다. “이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정말 모르겠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닭이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닭이 울기 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베드로는 밖으로 뛰쳐나가 심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웠을 것입니다. 거기서 “나는 예수님과 한패이고 그분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요”라고 말하지 못한 자신이 정말 밉고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늘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서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주님, 제가 이만큼 잘 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목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더 큽니다.

아마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마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베드로가 그로 인해 큰 상처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까 염려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중에 베드로가 있는 갈릴리 바다로 그를 찾아가셨을 것입니다.

자꾸 넘어지고 부끄럽운 모습을 보이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우린 비록 부족하지만 그 사랑을 의지하여 오늘도 주를 바라보고자 하고, 주님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리고 비록 작은 힘이어도 주님께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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