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8  목   눅23:33-43   149장

예수께서 해골이라 불리는 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주님의 좌우편에는 다른 죄수들도 처형되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을 죽인 자들을 향한 용서의 기도를 드립니다. 돌아가시면서도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의 은총 안에 들어갈 수 잇기를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그분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이 이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용서를 간구하는 주님과 달리 십자가 아래에 있는 자들은 주님을 조롱하고 희롱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관리들은 “저가 남을 구원하였다면 자기도 구원해 보라지.”라며 놀렸고, 군인들도 신포도주를 주며“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 자신을 구원해보라”며 주님을 희롱했습니다.

주님의 머리 위쪽에 패가 걸려 있었는데 그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글귀는 빌라도가 쓴 것인데, 원래 대제사장 무리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달라 요청하지만, 빌라도는 그냥 자신이 쓴 대로 패를 붙였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여 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유대인 무리들이 힘으로 자신을 몰아붙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만든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한 나머지 고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의도에서든지 결국은 예수님이 이 땅의 왕으로 오신 것을 증거 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악인들의 실수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하시는 세밀한 역사하심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두 행악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행렬에 동참합니다. 그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 죄수는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희롱하고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말이 남을 조롱하는 말로 끝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죄수가 그를 꾸짖습니다. “너도 똑같이 십자가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야 행한 대로 보응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을 행한 적이 없는 분이다.”

그 죄수는 예수님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간구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 죄수는 숨을 거두기 직전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 한 마디가 그의 영혼을 살렸습니다.

죽음의 순간에서까지 조롱하고 비아냥거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까지 타인을 미워하고 결국 자기 인생을 그렇게 허비해 버린 죄수는 구원받을 마지막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줄도 모르고 구원이신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지옥에 떨어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일말의 구원을 향한 소망이라도 있었다면 그리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죄수는 그 일말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 자기 영혼을 부탁드려 결국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어느 순간에라도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구원을 향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 가장 복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조롱당하는 현장에서도 그들을 향한 용서의 청원을 드렸습니다. 평생 제대로 살아오지 않은 죄수도 단 한 번의 구원을 향한 간구로 천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어떤 시간, 어떤 일이 우리를 향한 구원의 손길인지 우리는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들마다 내 감정과 욕심대로 말하고 행동하려 하기 보다 주님을 닮는 말과 행동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은 북한주민을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10명 중 6명이 영양부족 상태인 식량부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탈북한 600여명이 중국에서 강제송환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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