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인정받으신 주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시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3가지 시험을 던집니다. 모두 예수님이 유혹에 흔들릴만한 시험이었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에 대한 유혹은 가장 근본적인 유혹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 외에 다른 것이 보일 리가 없습니다. 가장 절실하고 가장 시급히 채워져야 할 욕구입니다.

시급하고 절실한 욕망 앞에서도 사람의 인생의 본질이 먹을 것에 있지 않다는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떡이 필요하지만, 떡으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마태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시급히 채워야 할 욕망 가운데서 무엇을 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절실한 배고픔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주님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세상의 권위와 영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 누구나 원하는 욕망입니다. 그런데 6절을 가만히 읽어보면 마귀는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저는 이것이 마귀의 거짓말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세상의 권위와 영광을 마귀에게 넘겨주셨습니까? 그것 또한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위와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그것을 구하다가 인생을 허비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다만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선에서 권위와 영광도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경배하고 섬겨야 할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수종들 것이라고 한 번 뛰어내려보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는가 그렇지 않으시는가 한번 뛰어 보려는 마음’ 그 자체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나오실까’라는 생각 속에 하는 행동은 믿음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경배도 아닙니다. ‘여기서 뛰어 내리라’라는 마귀의 말은 ‘여기서 너 자신을 아래로 던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진정 던져야 할 곳은 하나님의 뜻, 그분의 명령에 우리 자신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에 인생을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인생을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