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오실 그분이 주님이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에 나온 말씀들로 대답을 대신하시면서 그 예언된 일들이 예수님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사야의 예언은 어떤 것입니까?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사역은 그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모두 긍휼의 사역이었습니다. 살리는 사역이며 고치고 회복하는 사역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요한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임을 선포하신 일입니다.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하신 사역은 바로 긍휼과 회복의 예언을 이루는 사역이었습니다. 2000여 년 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예수님도 계속 그와 같은 사역을 하시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는 긍휼과 회복의 사역이 아닌, 알곡은 곳간 안에 두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는 심판의 사역을 행하시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대는 모든 것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우리의 인생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의 때를 준비하되, 살아있는 동안은 예수께서 하신 긍휼과 생명 회복의 사역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교회에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심판의 때에는 더 이상의 긍휼이 베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지금 긍휼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촉구하고, 세상이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를 알도록 그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의 책임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모인 사람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이 질문은 우리들을 향해 바꾸어 질문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교회에 나오고 있는가?” 이 질문에 사실 우리는 이미 대답을 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이 그 대답들입니다. 예수님은 훗날 우리 또한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무엇 때문에 주님을 부르고 찾으며 살아왔는지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로서의 삶의 열매를 맺어가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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