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직후 큰 무리가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 지르며 나옵니다. 자기 아들이 귀신들렸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 쫓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이 쫓아달라는 간청을 합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며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패역하다’는 말은 ‘뒤틀다, 추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토기가 완전히 일그러진 모양 같은, 원래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어떤 모습을 보시고, ‘패역하다’고 책망하신 것일까요?

‘패역하다’는 말 앞에 ‘믿음이 없다’는 책망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도 책망하셨지만, ‘패역하다’는 책망은 그것과 좀 다릅니다. 무언가 뒤틀리고 어긋난 제자들의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의 마음 상태에서 그것을 발견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보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못하면 믿음이 작아집니다.

귀신을 쫓는 것도, 병을 고치는 것도 나를 통해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혹여라도 그 일의 통로가 되는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거나 ‘내가 고치면 사람들이 나를 더 주목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어서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공간이 줄어듭니다. 제자들에게서 이런 마음을 발견하신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뒤에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의 문제로 다투는 것을 보면, 제자들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기들의 나라’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뒤틀려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게다가 자기들과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이 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그것을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세속적이고 타락한 종교인들의 모습을 닮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그런 일그러진 모습을 보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누가 더 크냐의 다툼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은 없습니까?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더 큰 자리를 차지하려는 다툼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것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도 ‘패역한’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은 그 ‘패역함’과 거리가 먼가요? 오늘 말씀은 두려워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혹여라도 지금 빠져 있다면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귀신들과의 싸움을 이기려면 이 ‘패역함’을 속히 회개하고 그것으로부터 즉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바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원미교우 여러분 모두 우리의 영혼과 삶이 뒤틀리지는 않았는지 늘 기도 가운데서 우리 스스로를 성찰해 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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