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앞에 ‘굳게’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굳게 결심하셨다’는 것인데, 왜 굳은 결심이 필요하셨을까요?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굳은 결심까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4절의 말씀처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은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통스러운 장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굳은 결심이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시는 예수님에게도 그 길은 굳은 결심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시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라들은 예수님이 자기들 마을을 지나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 일행을 통과시켜주지 않았습니다. 하룻밤 묵을 곳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굳은 결심을 흐트러뜨리려는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으니 제자들 입장에서도 화가 날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의 말은 좀 지나쳤습니다.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로 멸망시켜버리자고 하다니 제자들의 반응이 너무 지나쳤습니다. 뺨 한 대 맞았다고 사람을 죽이자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화를 내시면서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셨습니다.

당신을 거절한 사마리아에게조차 분을 쏟아내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도 장차 구원해야 할 당신의 백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에게 받은 천국 복음의 가르침이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아직 열매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우고 듣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그들의 삶을 바꾸지는 못한 상태라는 것을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12 제자의 한 사람이지만 열매맺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열매맺는 데에 많은 시간이 요구됩니다. 그러니 그 열매맺는 시간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겠습니까?

주님도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장애가 많으셨던 것처럼 열매를 맺는 데까지 어려움은 있게 됩니다. 그 실패와 좌절의 시간들을 다 이겨내고 열매를 맺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완주하기까지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도 굳은 다짐과 결심이 요구됩니다. 오늘의 기도가 그 결심을 이루는 기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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