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금요일 QT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을 바울이 전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통해 개인적인 이익과 이름을 높이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됩니다. 충만한 은사를 받고도 은혜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추한 욕망을 드러내는 수많은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꾸밈이 없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포장하고, 선하지 않은 의도를 숨기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들,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나는 우리 사회에 사도 바울의 말씀이 경종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도 선하지 못한 일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일어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모습이 우리의 교회들 안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두렵습니다.

11절에서는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며,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열심을 품는다는 말은 원어에 가깝게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에 보면 ‘영이 뜨거운 가운데 주님을 섬기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영이 뜨겁다는 말은 성령의 충만함을 말하는 것이니, 언제나 성령의 뜻을 따라 사는 가운데 주님을 섬기라는 말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구원의 소망을 기뻐하며 환란 가운데에서도 인내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환란 중에 기도하라는 말은 인간적인 절망감에 빠져 있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기도에 힘쓸 때에 절망을 이겨낼 힘을 성령을 통해 공급받을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13절의 말씀을 12절과 연결해서 읽어보십시오. 환란 중에 기도하며 다른 성도들의 필요를 위해 나의 것을 나누며, 그 어려운 중에도 손님을 대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풍요 중에, 넉넉한 중에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겨우 가루 한 움큼, 기름 조금 있는 아사 직전의 사르밧 과부와 그 아들에게 남은 곡식가루로 자기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오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하는 엘리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 없는 중에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따랐을 때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성도에게 요구되는 삶의 모습이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는 박해하는 자를 위해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말씀합니다. 미운 사람에게 떡하나 주는 것도 어려운데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말씀은 너무 오르기 힘든 산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린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생명을 얻었고, 받을 수 없는 가운데서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성도이기에 우리가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기에 바울은 능히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 추구해야 할 삶은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그리 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면 우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다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복있는 자의 삶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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