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주간 넷째날 오늘은 이웃에 대한 감사를 나누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 수능시험이 있는데, 이 땅의 수험생들 위에 주의 위로가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속에 모든 계명이 다 들어 있으며 사랑은 곧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을 바울 사도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첫째되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서기관의 질문에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29-31).

우리에게 허락하신 십자가의 사랑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의 사랑 모두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때, 그 사랑이 우리 주위의 이웃에게로 흘러가는 것이 곧 이웃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오늘 여러분의 이웃에게 감사를 전하시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평소 층간 소음으로 얼굴을 붉히고 지냈던 분, 바로 옆집에 사는 분, 오가면서 얼굴을 알게 된 이웃,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 물건을 배달해 주는 택배 기사분, 출퇴근 버스의 기사님,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웃분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찬수 목사님의 책 <감사>에서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감탄과 감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전에는 ‘감탄’은 ‘마음 속 깊이 느끼어 탄복함’이라고 되어 있다. 즉 감탄은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이 감사이다. 한자로 ‘감사’는 ‘느낄 감感’ ‘사례할 사謝’,로 되어 있다. 또한 ‘사’는 ‘말씀 언’과 ‘쏠 사’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속으로 기쁜 것, 속으로 느끼는 것은 감사가 아니다. 양궁에서 활을 쏘듯 ‘말’을 쏠 때 감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는 이런 말을 했다. ‘감사를 느끼지만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포장해 놓고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선물을 포장만 해 놓고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감사는 표현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 안의 감탄을 감사로 쏘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한때 우리 사회에는 ‘갑질’이란 말이 자주 회자될 때가 있었습니다.

있는 사람, 높은 사람, 가진 사람, 고용한 사람, 나이든 사람, 배운 사람 등이 그렇지 않은 이에게 모욕, 무시, 부당한 힘의 행사 등을 할 때 ‘갑질’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갑질’이야 말로 우리 믿음의 사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가까이 할 수 없는 단어이고 행동입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힘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섬기려는 사람들입니다. 강자들의 부당한 힘의 행사로 아픔을 겪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교회여야 하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이웃에게는 그 사랑을 전하는 통로로 세움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이웃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은 그 사랑의 중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더불어 이웃을 향한 작은 감사의 표현은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이웃들에게 작은 감사라 할지라도 그것을 실천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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