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월요일 QT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12장부터 바울이 그 실천적인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사랑’과 ‘선’입니다. 12장 9절에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들은 ‘사랑’과 ‘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절에는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까지 말씀하는데, 이것 또한 사랑과 선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이 개념을 가지고 13장을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13장만 따로 떼어 읽다보면 그 의미가 왜곡되거나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국가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의도는 사랑과 선과 같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성도가 행해야 할 삶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장 1절에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영을 거스르는 것과도 같아서 심판을 자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자는 권세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면 권세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권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성도에게 선을 베푸는 자이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선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국가나 통치자들의 존재가 갖고 있는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선을 도모하게 하고, 악은 제재하여 백성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국가적 역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선을 추구해야 하는 성도들은 국가가 수행하는 그런 선한 역할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종하고, 세금도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초점은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고, 그 관점에서 국가의 긍정적 역할을 이야기한 것이 13;1-7절의 말씀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3장 8절부터 다시 사랑과 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사랑’은 율법의 계명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한마디로 요약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이루었다고까지 말씀합니다.

이 계명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갈5:14에서도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바울은 왜 이와 같은 사랑과 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11-12절에 말씀합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이기 때문이며, ‘구원이 가까웠기 때문’이고,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 바로 사랑과 선을 이루는 삶이며, 그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14절)’ 것입니다.

성도의 행동은 항상 사랑과 선을 이루기 위한 출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영적(합당한)예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길로만 가고, 이와 같은 삶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드리고, 세상에는 희망을 주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