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수요일 QT


주님께서 죄를 가려주시는 복은 누구에게 복이 되겠느냐는 질문으로 오늘 본문은 시작됩니다. 죄가 있으나 없다고 간주해 주는 것입니다. 의롭지 않은데 의롭다고 해 준다는 것이죠.

그것이 누구에게 복이겠습니까? 죄가 많을수록 은혜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되겠지요. 유대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게 여겨 주셨다는 것을 바울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께서 천국을 포도원 주인에 비유한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은 그 포도원주인과 같은 분이십니다. 1시간 일한 것과 같은 아브라함에게 1데나리온의 일당을 다 쳐 주는 자비한 주인의 모습이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겨주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때에 그는 할례를 받지도 않았거니와 율법을 알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11절에 설명합니다. 할례받기 이전에 아브라함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사실은 아브라함이 할례받은 사람의 조상일 뿐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조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인증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할례가 아니라 은혜와 믿음을 연결고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데에는 할례와 율법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핵심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욱 강하게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는 유대인들의 생각이 잘못임을 인식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고정되고 왜곡된 신념이 이방인들의 복음화에 장애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 같은 주장을 강하게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 ‘할례’이고 ‘율법’이 되고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다른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장애로 작용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많은 성경지식이 남을 판단하고 나를 교만하게 하는 걸림돌인가요? 아니면, 교리들일까요? 실제 침례가 아니면 세례라고 인정하지 않는 교단도 있으니 그 교단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침례를 행하지 않으면 세례받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일까요?  헌신과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이 오히려 누군가를 판단하고 책망하게 되는 요인은 되지 않는가요?

그 가운데 우리에게 한 가지 꼭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하라면 단연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는 믿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믿음, 그분이 나를 창조하셨다는 믿음, 오직 그분만이 나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결국 살 길로 인도하고, 살 길로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완전한 의를 이루어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을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처럼 온전한 신뢰의 삶, 믿음의 길을 걸음으로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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