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월요일 QT


바울은 5장 19-20절에서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지만, 한 사람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어 생명에 이르렀다는 말씀과 율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더욱 풍성하게 임했다고 논증했습니다. 법이 없을 때에는 죄인 줄 모르고 지나던 것들도 법이 생기면서 죄인 것을 알게 되니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크게 임한다면, 우리는 죄를 더 많이 지어야 하는 것인가?

은혜를 받기 위해 죄를 더 많이 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게 되니 더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바울의 대답은 ‘NO’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에 대하여 죽은 몸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는데 어찌 다시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언제 죄에 대하여 죽은 존재가 된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와 합한다는 의미로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그분과 함께 죽은 존재가 되었다가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죄에게 종노릇 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이미 죽은 몸이 어찌 죄를 다시 짓겠는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혀서 죽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죄의 사슬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죽은 존재에게 무슨 힘을 발휘하겠습니까? 죽음으로 끝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미 죽은 존재여서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는 것이 바울의 논지입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가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죽는 일이 없으실 것이고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십자가에 죽으셨고,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 계십니다.

바울의 논지대로라면 이미 우린 죄에 대하여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죽은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존재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새생명에 대한 자각이 있는 성도는 죄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죄와는 정반대의 길인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가게 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죄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저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께 도우심을 구하여 모든 유혹에서 이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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