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수요일 QT


바울은 1절에서 ‘내가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노라’ 말합니다.

바울의 복잡한 속내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바울의 복잡한 심경의 이유는 유대인들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류의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오심과 그로 인해 이방인에게 구원이 열렸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택함 받은 것은 유대인, 자신들인데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은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 속에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별된 존재’로 부르셨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 멸망으로 향할지라도 자신들만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복음과 이방인을 향한 구원은 그들의 근본이 흔들어 대는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애초에 그런 굳은 신념 속에 살아온 사람이었기에, 그런 잘못된 신념 속에 여전히 갇힌 자기 동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을 향해서도 열린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자신의 유대동족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말할 만큼 동족에 대한 사랑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확장되었다고 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폐기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애초 하나님의 뜻을 육신으로 태어난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해서 다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구원의 은혜가 흘러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오해라는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계획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기의 동족 유대인들을 생각하면 바울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에 전하시려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란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약속 안에 들어오는 이는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혹시 내게도 유대인과 같은 구원에 대한 안일한 모습은 없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약속의 자녀다운 삶의 모습은 없으면서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안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신 것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요 사랑입니다. 선택하심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약속의 자녀가 가야 할 길을 찾기를 바라며, 성령의 소욕을 따라 열매맺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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