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목요일 QT

바울은 유대인들의 혼란과 불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의 자리를 빼앗긴 것과 같은 허탈감마저 갖고 있을 유대인들을 향해 바울은 말합니다.

‘이방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그분의 전적인 주권 아래 진행되는 것인데, 그분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에서가 아니 야곱을 선택하셔서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게 하신 것도 그분의 전적인 선택하심이었으니, 그동안 그 택하심의 은총을 입고 많은 특권을 누려온 유대인들로서는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그릇일 뿐임을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릇이 그릇을 만든 이에게 ‘자기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 따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릇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인 비교대상이 되지 못할 수 있지만, 바울의 논점은 그릇을 귀하게 사용하든, 천하게도 사용하든 그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의 주장을 읽으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지, 영적 삶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나 수고,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주장해 온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을 불의의 지체가 아니라 의의 병기로 드리자는 것,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 등의 주장은 영적 생활에 있어서의 우리의 의지와 성화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단지 여기서는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하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유대 신앙인들을 향해 모든 구원의 계획과 실행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 것뿐임을 말씀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미워하셔서도 아니요, 그들을 포기하셔서도 아니요, 이방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어떤 우월적인 면이 있어서 구원의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님을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죽은 인생을 다시 살리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때문임을 잊지 말고 늘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자꾸 무언가를 바라기 보다는 영광의 그릇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겸허함이 더욱 요구되는 때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도 그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곳에 온전히 쓰임받기 위해 순종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두가 그런 믿음의 모습을 갖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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