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7  행11:19-30  208장

스데반의 죽음은 여러 모양으로 성도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매일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고 교제하고 떡을 나누던 성도들이 이제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도 나도 정든 유대 땅을 떠나거나 자기 삶의 기반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제를 깊이 나누던 성도들이 서로 헤어지는 슬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슬픔 중에 환란이 겹치니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며 말씀을 배운 그 힘이 그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었습니다. 피신한 곳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예수가 주님이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쁘게 전했습니다.

성도들이 피신한 도시는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별히 안디옥에 이른 성도들의 전도를 통해 믿는 무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디옥의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복음을 접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안디옥에서의 교회의 성장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이방인의 회심은 유대인들로서도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통해 소문의 실상이 어떤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신뢰할만한 바나바는 그곳에서도 신실함을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선한 삶과 성령과 믿음에 충만한 영성은 안디옥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전하여 그를 통해 믿게 된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로 들어온 신자들을 가르칠 교사가 부족해졌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떠올리고 다소로 찾아갑니다. 25절에 ‘찾으러’라는 단어에는 ‘어렵사리 찾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소에 가서도 사울을 순조롭게 찾은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고향에서도 예수님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안에서는 사울의 상속권이나 특권을 모두 빼앗아 버린 듯 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그곳에서도 홀로 따로 떨어져 지냈던 것입니다.

사실 사울은 고향에 갓지만, 고향 사람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울에게 찾아온 날부터 사울의 삶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었고, 그런 자신의 삶에 대해 사울은 후회를 품지 않고 한결같이 예수를 전하기 위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신실함을 보셨기에 하나님은 바나바를 통해 사울을 찾게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나바는 끝내 사울을 찾아 안디옥으로 함께 옵니다. 그리고 사울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 예언하신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메시야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안디옥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전한 바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습니다. 안디옥 도시 사람들은 그런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까지 선지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중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온 천하에 기근이 들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몇해 동안 심각한 기근이 유대와 예루살렘을 강타하여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해 헌금을 하기로 작정하고 매년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글라우디오 황제 시절 그 헌금을 가지고 바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교인들이 복음을 전한 안디옥교회, 그런데 그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다시 그들을 돕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이렇게 서로를 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의 삶에는 이런 놀라운 복과 은헤가 흘러갑니다. 우리들을 통해서도 세상 이곳저곳 어려운 이들에게 은혜와 복이 흘러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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