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3  금  행2:37-47   285장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림이 생겨 사도들에게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의 물음에 답을 합니다. “각자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그리고 멀리 떨어진 모든 사람,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말을 하고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함을 받으라고 선언하자,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를 향해 돌을 던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 대신 회개하였습니다.

큰 은혜가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의 수가 많아지게 되고, 사람들은 날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교제를 나누고 빵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렇게 믿는 이들이 모여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는 중에 이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모임 중에 기사와 이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믿는 이들이 함께 지냈으며 각자의 물건을 서로 공유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심지어는 재산과 소유를 팔아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기의 소유권보다는 교우들의 부족함과 필요에 더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심과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도함과 서로 교제를 나누는 것이 그들의 삶을 이타적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열매가 구원에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삶의 변화된 열매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타적인 삶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체험과 복음의 가르침, 기도 교제 등이 우리의 관심을 ‘나’에게서 ‘타인, 이웃’에게로 옮기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교인들의 삶에는 기쁨이 넘치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교인들을 향한 칭송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향해 구원받는 이들을 날마다 더해 주시는 은혜를 다시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으로 종종 회자되는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사회상과 오늘날의 사회상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의 교인들의 모습 그대로를 우리가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그대로 우리 삶에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타성’입니다.

교회는 나를 향한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같은 무게와 크기로 교회는 타인, 즉 세상을 향한 공동체라는 사실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 두 가치를 균형있게 조화시켜 가는 것이 우리 교인들의 몫입니다. 우리 원미교회가 우리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이웃을 위한 교회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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