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7  화  행4:13-22  505장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한 증언을 들은 대제사장 무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베드로와 요한을 율법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었는데,  베드로와 요한은 시편을 인용하며 구약의 예언이 예수께 성취되었다는 것까지도 증언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낫게 하여 지금 멀쩡하게 걸어다니고 있는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거지까지 법정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두 사도를 더 이상 심문하거나 붙잡아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제사장무리들은 두 사도를 위협하여 예수의 이름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증언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풀어주기로 결정합니다.

대제사장 무리들은 두 사도를 불러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더욱 담대하게 대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판단해 보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무리들은 두 사도에게 아무런 해도 가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백성들이 평생에 걷지 못하던 이가 걷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두 사도를 벌하였다가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인들이 될 뿐임을 알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사도들을 풀어주게 됩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도들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22절에는 이 놀라운 기적으로 걷게 된 사람의 나이가 40세가 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평균 연령이 40세이던 시대에 그가 치유받은 나이가 40여 세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인생 말년에 이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던 병자, 평생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여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걷게 된 이후의 삶이 너무 행복했을 것입니다. 단지 병이 나아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한다면 우리는 은혜의 통로가 되고 기적의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그 누군가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맛보지 못한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 기쁨과 치유와 은혜의 통로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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