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데반의 설교는 모세로부터 솔로몬 시대까지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중에 모세에 관한 말씀이 대부분인데, 두 군데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려 합니다. 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두 족장들이며,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며 하나님과 동행한 족장들의 하나님으로 당신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믿고 그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믿음을 요청하고 계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당신을 소개하신 후 하나님은 모세를 도망 나온 애굽으로 다시 보내십니다. 그 백성을 이끌어 나오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때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아주 분명한 자세인데, 그것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 몸에는 의복을 입지만, 발에는 신발을 신지 않고 들어갑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섬기겠다는 자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에게는 이런 자세가 항상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에서 특이한 표현 하나가 있습니다. 38절에 언급된, ‘광야교회’라는 말입니다.

스데반은 광야 40년의 세월을 광야 교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배운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온통 모래와 뜨거운 태양 빛 밖에 없는 광야,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고, 햇볕을 피할 곳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40년을 생존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시고 먹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빛은 구름기둥으로 피하게 하셨고, 밤의 추위는 불기둥으로 이겨내게 하셨습니다.

광야는 그렇게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만 했던 곳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40년을 지내며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 40년의 세월을 스데반이 광야교회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결국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만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오늘날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이 말씀에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원미교회도 온전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삶을 언제나 몸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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