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시신을 장례지낸 교회는 큰 슬픔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율법을 고수하는데 열정이 뜨거웠던 사울은 집집마다 다니며 교인들을 색출하여 잡아가 교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율법학파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학파에 속하여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행26:5에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장 뜨거운 열심은 그 방향이 잘못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핍박을 피해 교인들은 유대 땅과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 지역으로까지 옮겨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중에 빌립은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당신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즉 주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핍박을 계기로 사마리아 땅으로 순종하여 들어간 빌립과 같은 제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적대적 편견을 버리고, 말씀을 이루기 위해 빌립은 사마리아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사람들이 빌립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을 보면서 빌립의 말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빌립은 귀신도 내어 쫓고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여 믿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빌립은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절과 8절, 그리고 어제 읽은 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8장 1절에 보면 ‘큰 박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 “크게 울더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큰 박해의 결과 큰 슬픔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슬픔을 마지막으로 교인들의 삶이 마무리되었다면, 교회는 소망없는 가운데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큰 슬픔 뒤에 8절을 보면, 큰 기쁨이 생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큰 박해의 결과가 큰 기쁨으로 이어졌다는 보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해가 기쁨을 가져오다니요?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박해의 결과가 기쁨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까?

바로 빌립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박해에도 불구하고 증인으로 살아가는 순종의 결과가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누가의 이 보고는 우리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전하여 주고 있는데, 성도들의 삶에 기쁨이 오게 하는 통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빌립은 스데반과 더불어 초대교회에 처음 일꾼으로 세워진 일곱 집사 중 한명이었습니다. 교회의 일꾼, 집사의 순종이 박해 중에도 큰 기쁨으로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가 이룬 기적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굉장히 큰 일이지만, 그 모든 일의 바탕에 증이되어 살겠다는 순종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빌립의 순종은 대다히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고 증언하는 것 그것이 빌립이 행한 순종입니다. 이 순종의 삶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도 있어 우리의 삶의 어느 순간에도 큰 기쁨의 열매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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