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논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시절, 헤브론에서 얻은 아내 아히노암으로부터 얻은 장자였습니다. 그런데 암논이 그술왕 달매의 딸로부터 얻은 이복동생 다말을 좋아하였고, 요나답이라는 간교한 자의 계교를 받아들여 다말에게 악한 짓을 할 계획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다윗을 이용하여 다말을 오게 하였고 다말이 ‘이 죄를 행하지 말라’고 간청하는데도 불구하고 듣지 아니하고 자기 욕망이 이끄는 대로 범죄하였습니다. 그런데 암논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다말을 내쫓고 맙니다. 이것은 다말의 표현대로 더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암논은 왜 이렇게 악하고 더러운 죄악을 두려움 없이 저지르게 되었을까요?

다윗의 장자입니다. 때가 되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답과 같은 간교한 자들이 주변에 얼쩡거린 것이고, 암논 자신도 그 지위와 힘을 믿고 죄악인줄 알면서도 두려움 없이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우리아와 그의 아내에게 행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힘과 위세를 믿고 함부로 행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힘의 남용이며 폭력이었으며 나단을 통해 다윗을 책망하셨듯이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범죄행위였습니다. 암논은 그 행동이 이후 자신의 인생을 어찌 바꾸어 놓을지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동생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듣게 되었습니다. 상처받은 동생을 위로하며 자기 집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암논의 행위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고, 암논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한편, 다윗은 이 일을 전해 듣고는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암논을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압살롬이 양털깎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에게 오기를 청하였으나 다윗은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 하여 가지 않겠노라 대답을 합니다. 그때 압살롬은 다윗을 대신하여 장남인 암논 형을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암논이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지만, 압살롬이 계속 간청하자 끝내 허락하고 맙니다. 암논이 다윗을 이용하여 다말을 오게 했듯이 압살롬도 다윗을 이용하여 암논을 오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양털깎는 축제 날, 압살롬은 초대되어 온 암논에게 포도주를 잔뜩 먹이고 취하게 한 후 부하들을 시켜 암논을 죽이게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다말에게 한 악한 짓을 암논에게 항의하지 않았던 이유, 사람들에게도 암논의 잘잘못을 비난하지 않고 있었던 이유가 모두 이 계획을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아주 치밀하고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암논을 징계하지 않은 탓에 결국 압살롬이 형을 죽이는 것으로 동생의 한을 대신하여 풀어준 것입니다. 자식의 잘못을 징계하지 않은 것이 더 큰 화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잘못한 일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 징계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지만, 암논의 죄는 너무나도 악하고 부도덕한 일이었기에 징계를 하지 않은 것은 다윗의 큰 실수였습니다. 결국 동생이 형을 죽이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다윗이 우리아를 죽인 죄의 씨앗이고 열매들이었습니다.

죄가 죄를 낳고 그 죄들이 사망을 낳았습니다.

루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는 막을 수 없으나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우리의 머리속을 스쳐지나가고 때로 죄의 달콤한 유혹들이 꽈리를 틀고 자리 잡습니다.

그런데 유혹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만,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여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다윗이 그리 했고, 암논이 뒤를 잇고, 압살롬도 그리 하였습니다.

죄의 생각을 끊어내야 합니다. 생각을 계속 품는다는 것은 죄의 씨앗에 물을 주는 행위와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자신의 죄를 못 박으신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어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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