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먼저 앞세우게 된 다윗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다윗뿐 아니라 왕궁 전체가 위기를 맞을 것이 뻔했습니다.

왕위를 이을 왕자가 모두 죽었다는 말은 나라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 같은 큰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나답은 암논만 죽었을 것이라고 다윗을 위로하듯 말합니다. 자신의 계교로 암논이 다말을 욕보였었지만, 요나답은 아무런 가책이 없습니다.

그는 암논의 욕망을 채울 방법을 알려주더니, 이번에는 압살롬의 분노가 암논에게만 향했을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합니다. 두뇌회전이 빠른 요나답 그러나 그는 그런 재능으로 타인을 해롭게 하는 일을 꾸몄고, 그 이름을 후세에게 부끄럽게 남겼습니다.

다윗과 신하들이 큰 슬픔에 젖어 슬피 울고 있을 때, 파수꾼의 눈에 여러 사람들이 언덕길로 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왕자들의 무리였습니다. 요나답은 얼른 알아채고 다윗에게 알립니다. 왕자들은 아버지 다윗을 보고 통곡합니다. 그 모습에 함께 있던 모두가 통곡하였습니다.

한편 압살롬은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저질렀기에 왕궁에 남지 못하고 외가인 그술 왕에게로 피신해 갑니다. 다윗은 암논의 죽음을 매일 슬퍼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죽은 암논보다는 살아 있으나 볼 수 없는 아들 압살롬을 향한 그리움으로 채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죄로 인한 고통은 그가 감당하기에도 너무 큰 것들이었습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유혹을 절제하지 않아 죄가 씨를 뿌리고 열매맺으니 그 열매가 가져다주는 것은 일시적인 쾌락뿐이요 그후부터는 오랜 고통이 지속되었습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잠깐 뿐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평생에 이르기도 한 것입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다윗은 아마 평생에 장자였던 암논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살아있으나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아들 압살롬도 그리워했습니다. 비록 형을 죽인 아들이어도 자식은 자식인지라 다윗의 마음은 압살롬을 보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죄가 상관과 부하의 사이를 갈라놓더니, 형제 사이를 원수로 갈라놓고, 이제는 부자 사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관계의 단절과 파괴, 그로 인한 상처는 모두 죄를 지은 사람의 몫이고 거기서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아픔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면 좋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의 원한과 복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게 하고 키워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커 봐야 고통과 슬픔만 낳을 뿐입니다. 억울한 복수도 하나님께 맡기셔야 합니다.

억울한 일이 있을 때에도 용서가 가장 큰 복이겠지만, 억지로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단 용서할 수 없을 땐 하나님이 갚아주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이 되어야 우리 자신의 삶을 잃지 않게 됩니다. 죄는 단호히 끊어내고,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복되고 지혜로운 해결방법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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