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피난길에 있을 무렵에 그 아들 압살롬은 다윗의 부하였던 아히도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무혈입성하였습니다. 그때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환영하였습니다.

압살롬은 후새의 그같은 태도를 보며 의문을 품고 묻습니다.  ‘아버지의 친구인 네가 왜 아버지와 함께 가지 않았느냐?’ 그러자 후새는 자신은 하나님이 뽑으신 분의 편에 서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다윗을 섬겼듯이 이제는 그 아들인 압살롬을 섬길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후새는 지금 하나님이 정하신 임금이 압살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에 압살롬은 후새를 향한 의구심을 거둡니다. 후새는 다윗의 요청대로 압살롬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행동하여 압살롬 진영의 정보를 빼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는데, 그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후새에 대한 의문을 거둔 후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어떤 일부터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에게도 신뢰할만한 참모였었는데, 압살롬에게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만큼 지략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어떤 연유에서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역모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압살롬은 아히도벨을 얻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고, 현재 그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이 물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조언한 것은 다소 의아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후궁과 대낮에 동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만방에 압살롬이 다윗에게 미움받을 행동을 했다고 알려야 압살롬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욱 힘을 낼 것이라고 조언한 것입니다. 이같은 일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부도덕하고 지탄을 받을 행동입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은 이 행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과 압살롬이 확실히 결별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임과 동시에 압살롬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다윗과의 타협이나 협상의 여지없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국 백주 대낮에 왕궁의 옥상에서 압살롬은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는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데 23절에는 사람들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이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중의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계략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사뭇 다른 방향의 조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압살롬도, 백성들도 그의 조언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것입니다. 실상은 이 구절이 하나님의 뜻과는 달랐으나 하나님의 지혜처럼 여긴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워 보이고 그럴듯하게 들려도 사람의 조언과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고백한 바울의 말씀(고전1:25)처럼 아무리 지혜롭고 유익해 보여도 우리는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구해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조언이지만,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묻는 과정이 압살롬의 삶에서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물음을 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 마지막에 승리하는 삶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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