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미스바는 삼상 7장에 한번 등장했던 장소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던 그 때 젊은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모아 우상 신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백성들이 그에 화답하여 하나님께 회개를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후 사무엘이 그곳에 기념돌을 세우고 그 돌의 이름을 ‘도움의 돌’이라는 뜻으로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무엘이 그 장소로 백성들을 불러 모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이라는 약속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 선택되는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도우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시려고 미스바로 모이게 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분임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저버린 행위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각 지파별로 1,000명씩 앞으로 나오게 합니다.

지파의 규모와 힘의 크기에 상관없이 똑같은 수의 백성을 나오게 하였습니다. 그 중에 제비뽑기로 한 지파를 선택하였는데 베냐민 지파가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 마드리의 가문이 뽑혔고, 그리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선택된 사울을 찾고자 하였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짐짝 사이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사울은 짐짝 사이에 숨어 있었을까요?

이미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후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도 여러 번 체험하게 하셨는데 사울은 정작 자신이 왕으로 뽑히는 순간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면 짐작이 가는 행동이라 여겨집니다. 비록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무엘과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의 마음과 온 백성이 다 모인 자리에서의 마음의 상태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 부담스럽고 떨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 앞에 선다는 것이 떨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앞으로 민족의 지도자로 서야 할 사울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아주 컸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백성으로 사는 것과 지도자로 사는 것은 너무도 다른 일입니다.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은 목사로서 교인들의 영적 삶을 지도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영적 부담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도중에 목회를 그만둔 분도 있습니다. 영적 부담감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목회현장을 떠났습니다. 지도자로서의 자리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부담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사울도 순간 피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제 읽은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듯이 이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짓누르는 영적 부담감도 이겨낼 수 있고, 교만함에 빠지지도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미 사울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제비뽑기조차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일을 우리가 이룬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일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겸손히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우리의 가정, 그리고 교회와 나라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헌신하지만, 그 모든 일의 결과는 주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에 아멘하며 살아갈 뿐임을 늘 잊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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