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엑의 말을 들은 사울은 즉시 아히멜렉 집안의 제사장들을 모두 소환했습니다. 사울은 아히멜렉을 추궁합니다. 그에게 먹을 것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해 기도해 준 이유가 다윗과 공모하여 자신에게 맞서려는 것 아니냐며 심문하듯 따집니다.

그는 선한 의도로 다윗을 도와주었던 것뿐인데 그것이 역적모의를 한 것처럼 여겨지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울의 말에 아히멜렉은 다윗이 사울이 아끼는 장수이고, 사위이며 궁중의 존귀한 존재이니 그렇게 대한 것뿐이라며 자신은 다윗과 공모하여 사울을 대적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말하며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허물을 묻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결국 부하들을 시켜 아히멜렉의 집안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너무도 끔찍하고 잔인한 명령이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자신의 감정만으로 아히멜렉 집안 사람 모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상식과 도의 그리고 율법에도 어긋난 결정이었기에 군사들은 주저하였습니다.

군사들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부당한 명령이고 너무도 잔인한 명령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백성된 자로서도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결국 사울은 도엑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네가 제사장들을 죽여라”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출세에 눈이 뒤집힌 도엑은 주저함이 없이 달려가서 제사장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자그마치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였습니다.

사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놉의 성읍 사람들에게까지 화풀이를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와 젖먹이까지 죽였고 가축들까지 죽였습니다. 왕이 아니라 도살자, 학살자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욕망에 이끌려 사는 삶이란 이리도 무섭고 잔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울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에게 모여든 억울한 사람들, 압제당한 사람들도 이같은 일들을 당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사울이 이렇게 악의 화신이 되어가는 동안 다윗의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에게서 마음이 떠나기 시작합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 지위나 인격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내 것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극에 달하면 누구라도 사울이 될 수 있습니다. 히틀러도 자기민족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그토록 잔인한 일을 벌였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얻은 승리가 무슨 소용입니까? 결국 망하는 길로 귀결될 뿐입니다.

이런 유혹과 끔찍한 죄악에 이르지 않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것만이 욕망에 이끌려 살도록 하는 모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죽이는 삶이 아닌 살리는 삶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는 내가 죽는 길 같지만, 나도 살고 다른 이들도 사는 생명의 길인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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