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블레셋을 치기 위해 퇴각했다가 다시 다윗이 엔게디에 숨어 있다는 첩보를 듣고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자들이 600명이었으니 5배가 넘는 군사들을 이끌고 온 것입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잡으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그런데 길 옆 양의 우리가 있는 굴에 이르렀을 때 사울이 용변을 보려고 굴로 들어갔습니다. 하필 그 굴 안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부하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를 그 손에 내어주신다고 말씀하신 날이 오늘인가 보다며 사울을 죽이자고 다윗을 재촉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울을 죽이면 도망자의 삶도 다 끝나고 자신을 믿고 그동안 고생해 온 부하들의 고생도 끝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부하들은 하나님이 원수를 다윗의 손에 붙이신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윗은 부하들과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해하지 않고 대신 그의 옷자락을 살짝 베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행한 것조차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부하들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였을 수도 있지만, 다윗은 사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에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6절에서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다윗은 여기서 사울을 일컬어 ‘내 주’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와도 같은 존재인 사울에 대해 여전히 ‘나의 주’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세상에서 당연시되는 방식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손에 쥐어진 세상 방식보다는 시간과 노력이 걸리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방식을 찾아간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왕인 사울을 향한 존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다윗이 사울에게 손대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존중 때문이었습니다. 부족하든, 미련하든 사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사무엘을 통해 기름 부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사울을 택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그를 버리시고 심판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확고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사울의 심판자가 될 수 없다는 신앙고백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게다가 부하들에게도 사울에게 손대지 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손익을 따지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다윗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은 눈앞의 유익과 손해 앞에서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 가장 큰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진리 편에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옳은지 그른지 헤아려보는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에도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의 사람다운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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