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영적인 후견인이자 이스라엘의 진정한 선지자인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크게 의지하던 이가 이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다윗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사해 근처인 엔게디에 숨어있던 다윗도 더 한참 아래쪽인 애굽 근처의 바란 광야로 내려갑니다. 아마 사무엘이 죽고 나서 한 동안 그곳에서 머문 것 같습니다. 사울이 거기까지 다윗을 잡으러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얼마의 기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다윗은 다시 유대 광야지역으로 올라왔습니다. 마온 근처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곳에 갈멜의 큰 부자인 나발이란 자가 살고 있었고, 그가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집니다.

양털 깎는 축제는 잔치이고, 그때는 많은 이들에게 음식도 나누고 베풀기도 하는 날입니다. 무리가 많았기 때문에 음식을 마련하는 것은 다윗에게도 정말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평소 나발의 양떼를 치는 목동들을 보살펴 준 다윗은 나발에게 식량을 지원받아볼까 하여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다윗을 향해 ‘자기 주인을 버린 자, 출신을 알지도 못하는 자’라는 호칭을 써가며 그런 사람에게 줄 음식은 없다고 말하며 먹을 것 대신 모욕감을 주어 다윗의 부하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달려갑니다. 다윗의 일행들이 양을 치는 들녘에서 아무런 해도 받지 않도록 자신들을 보호해 주었다는 이야기와 그런 다윗의 요청을 나발이 모욕적으로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아비가일은 깜짝 놀랍니다.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눈에 선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알리지 않고 얼른 먹을 것을 준비시킵니다.그리고 다윗이 달려올 길목으로 나갑니다.

한편 다윗은 나발에게 다녀온 부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화가 났습니다. 그는 나발이 선을 악으로 갚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나발과 그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며 평소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몹시 흥분을 했습니다.

22절에 보면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를 다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말은 ‘남자’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에 보면 ‘벽에 소변보는 자’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경멸적이고 저속한 표현입니다. 다윗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까지 읽었습니다.

본문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됩니다. 본문에는 다윗과 나발, 아비가일의 행동이 비교됩니다. 다윗은 도망자의 삶을 사는 중에도 백성들을 보호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것은 음식을 얻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 있겠지만, 그일라에서의 일도 그러했듯이 다윗에게는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양털을 깎는 잔치에서조차 나그네와 같은 신세에 처한 다윗을 돕고자 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겁나서였을까요? 그랬다면 다윗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옳지만, 나발은 다윗을 모욕하고 경멸했습니다. 명예를 중시하는 이스라엘에서 이는 적대적인 행위였습니다.

자신의 목동들이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도 유다지파에 속한 자로서 같은 유다지파인 다윗을 심하게 대한 것입니다. 결국 그의 인색함과 어리석음이 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반면 아비가일은 감사를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의 어리석음을 메워줄 지혜가 있었습니다. 이날의 사건이 세 사람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다윗과 아비가일에게는 선한 결과가 주어지고, 나발에게는 재앙이 오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복을 부르고 화를 부르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복을 부르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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