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24장의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 말씀입니다. 십 사람 중 누군가가 다윗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를 사울에게 제공하였습니다. 십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유다 지파에 속해 있고, 갈렙 가문의 한 분파입니다.

그런데 왜 십 사람은 다윗에 대한 정보를 사울에게 전하였을까요? 그들 가문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발이었던 것입니다. 나바르이 아내인 아비가일을 데리고 간 다윗은 그들 가문의 권리를 탈취한 것과도 같았으니 그들로서는 다윗과 아비가일이 미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누군가 다윗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입니다.

사울로서는 아주 귀한 정보를 제공받은 것입니다. 사울은 이전처럼 군대를 소집해 3천의 군사로 다윗을 잡으러 옵니다. 그러나 24장에서처럼 온 이스라엘이 모인 것은 아닌 듯 합니다. 24장과 달리 ‘모든’ 이란 단어가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사울을 지지하는 세력도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사울의 편이든 다윗의 편이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편에 서기도 하고, 저편에 서기도 하는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우리를 포함해서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계속 있게 될 것입니다. 이편 저편 선택하여 사는 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가를 볼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반대쪽에 서는 일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진을 치고 다윗을 잡을 계획을 가지고 있엇는데, 이미 다윗도 정찰병을 통해 사울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진영을 파악한 후 그 진영 본진의 사울에게 함께 갈 사람을 찾았습니다.

아비새가 나섰습니다. 아비새는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며, 요압의 동생입니다. 다윗에게는 조카이죠. 나중에 이 아비새가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다윗은 아비새와 사울의 막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두 잠들어 있어 다윗과 아비새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아비새는 이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사울을 죽이겠노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다윗이 말립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기에 그렇게 행하는 자에게 벌이 내릴 것이라며 아비새를 말립니다. 대신 사울의 창과 물병만을 가지고 갑니다.

이로써 두 번이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대내외에 자신은 사울을 죽일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리게 됩니다. 사울의 악을 다윗이 선으로 갚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세상에는 목적이 선하면, 수단이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논리로 얘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는 그런 세상 목소리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과정도 선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도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10절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대단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같은 선택을 하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눈여겨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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