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제사장 엘리가 매우 늙었을 때에서야 자기 아들들의 악행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사실을 엘리만 모르고 있었던 차에 누군가 그에게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로 악행이 심한 것을 알게 된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그들의 악행을 그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사람에게 한 악행은 하나님이 중재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께 악을 행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변호하여 줄 수 없다며 나무랐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악행이 심했으면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작정까지 하셨을까요? 그 언급만으로도 그들의 악행이 짧은 기간에 행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저질러온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은 아주 오랜 기간 참아오셨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전에 속히 회개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참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날 선지자를 보내셔서 엘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전한 경고는 너무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집안에 주신 제사장의 특권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은 책임을 엘리에게 묻고 계셨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를 더럽힌 것에 대해 엘리에게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엘리가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들을 더 사랑하였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는데, 엘리의 자식 사랑이 선을 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절차와 규례를 지키는 것보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픈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소중하게 여긴 것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그런 엘리의 태도가 자식들의 죄악을 더 키운 원인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모습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지체없이 순종하여 모리아 산으로 갔던 모습과는 상이하게 다른 모습입니다.

자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앞세운 아브라함과 하나님보다 자식을 앞세운 엘리와 삶의 태도의 차이가 복과 저주를 가져오는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존중하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당신을 경멸하는 자를 경히 여기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모습과 달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는 이가 있었습니다. 어린 사무엘이었습니다. 백성들도 그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당신을 위해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제사장은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원히 행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사무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아마 솔로몬 시절에 엘리의 후손인 아비아달이 쫓겨나고 세워진 사독과 그의 후손들인 제사장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그의 출신이나 신분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의 손에 들려 쓰임받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모두가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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