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애굽인의 안내로 아말렉 진영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들은 승리와 탈취한 전리품으로 인해 기뻐하며 먹고 마시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급습했고 이틀에 걸쳐 아말렉인들을 죽입니다. 그들 중 400명 정도만이 도망쳤습니다.

부하들의 가족뿐 아니라 자신의 두 아내도 무사히 구출했고, 빼앗긴 재산과 가축들을 되찾고, 아말렉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것들까지 전리품으로 다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승리를 취했습니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200여명의 지친 군사들이 있는 브솔 시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모두 가족들과 기쁘게 재회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을 치고 돌아오는 부하들 중 일부가 전리품으로 인해 욕심이 생겼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가지 않았던 200명에게는 가족들과 그냥 돌려보내자는 것입니다. 자신들처럼 싸우지 않았으니 그들에게는 전리품들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입니다. 전리품은 싸운 자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겨진 200명이 누구입니까? 오랫동안 자신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동지들입니다. 전리품에 눈이 멀어 지금 그 동지애를 깨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전리품을 챙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도망자로 살 때는 서로 협력하던 이들이 소유가 풍성해지자 그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동료들을 외면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겨낸 뒤에 얻은 큰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될 뻔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성공, 번영, 풍요 앞에서 공로의식이 발동하게 되면 이같은 분열의 싹이 자라납니다. 타인이 공로를 인정해주고 그 수고에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스스로 공로의식을 내세우게 되면 갈등의 싹이 돋아납니다.

성경은  이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22절에 단적으로 ‘악한 자와 불량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악하고 불량하다고 판단하신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 133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라고 찬양합니다. 서로 돌보고 살펴주는 형제애는 선하면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수고를 드러내며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마음은 악하고 불령한 것임을 성경은 드러냅니다.

다행히 다윗이 나섭니다.

다윗은 자신들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주신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전리품은 모두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움에 나간 자나 남아서 지킨 자가 모두 자기의 역할을 한 것이므로 같은 몫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다윗은 전리품으로 얻은 것의 몫을 골고루 나누는 것을 율례로 삼게 됩니다. 또 다시 이같은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게 되면 공동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아말렉에게서 얻은 전리품은 자신들만 갖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피신하면서 신세졌던 사람들과 협력해 준 이들에게도 나누어주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까지는 주지 않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다윗은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서 베풀고 나눈 것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존재함을 알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남들만큼이 아니라 남들 이상의 긍휼을 베푸는 모습은 다윗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또한 그런 모습이 하나님의 복을 더 크게 받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성품과 믿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이 마음을 닮아 하나님이 즐겨 축복하시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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