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군사들은 도망치기 바빴고 블레셋인들은 그런 이스라엘을 따라가며 죽였습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을 포함하여 사울의 세 아들이 전사했고 사울마저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무기를 든 자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방인 블레셋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무기를 든 병사는 차마 사울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주저하자 사울 스스로 자기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러집니다. 사울이 죽은 것을 보고 무기를 든 자도 따라 죽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읍을 버리고 도망쳤고,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은 성읍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이튿날 블레셋인들이 사울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자르고 갑옷을 벗겨 블레셋 땅 사방으로 보냈고 자기들의 신전에 승리의 소식을 고했습니다.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 신전에 보관했고 사울의 주검은 벳산 성벽에 매달았습니다.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달려와 그의 시신을 성벽에서 내려 야베스로 돌아와 화장을 치렀습니다. 화장은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장례문화는 아니지만 사울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화장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의 뼈를 에셀나무 아래에 묻고 7일 동안을 금식했습니다.

본문은 사울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진정한 친구였던 요나단도 함께 죽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버렸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예정된 결말이었습니다.

평범한 백성이었던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으나 순종하기를 기뻐하지 않았던 탓에 결국 비극적인 죽음으로 그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 자리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를 잊고 살았던 사울은 결국 그 마지막이 불행하게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다윗을 죽이려던 칼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충성을 보였던 다윗을 시기하여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가장 큰 복을 가져다 준 사람에 대한 감사를 잊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왕위를 허락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도 잊은 사람입니다. 고마움을 잊으니 그 마음자리에 교만함이 자리잡았습니다. 영원하기를 바라며 움켜쥐고 있었던 권력도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인생이 번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에 진정한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헛된 주인의식이 진정한 ‘나’를 망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청지기의 의식을 알려줍니다. 에덴을 관리하던 아담이 에덴의 주인이 되려고 한 순간 낙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생명도, 소유도, 그리고 인생이라는 시간도 나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아는 것, 그 앎에서 모든 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복 있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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