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향한 블레셋과 암몬족속의 억압이 심해지자 백성들이 자신들의 바알 숭배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습관적인 회개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환란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10:14)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개를 받아들이지 않으신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죄가 뿌리 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당시에 백성들은 가나안의 신들이란 신들은 모두 이스라엘 안에 세워두고 섬겼습니다. 가장 왕성한 우상숭배의 시기였습니다. 그 깊이 내린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시간을 늦추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회개를 받아주지 않으시자, 백성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얼른 자기들 가운데 있던 우상들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자신들의 회개를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의 마음이 누그러지셨습니다.

한편 11장에서는 암몬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싸움을 이끌 지휘관이 없었습니다. 길르앗 방백들이 누가 나서서 암몬과 싸울까를 논의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전쟁을 이끌어갈 장수가 없었기에, 자신들이 창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쫓아내버린 입다에게 찾아갔습니다.

입다는 어머니가 창녀라는 이유로 공동체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출신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공동체에서 버림받은 입다는 결국 불량한 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이끌며 위세를 과시했던 것 같습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고, 길르앗 방백들은 그같은 심정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상처를 깊이 입은 입다는 그들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방백들의 요구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러자 방백들이 자신들의 요구대로 전쟁에 나가준다면, 입다를 그들의 지도자로 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장관(지휘관)과 ‘모든 주민의 머리’는 그 위치가 아주 다릅니다. ‘모든 주민의 머리’라는 자리는 전쟁 때나 그 권한이 주어지는 지휘관과는 차원이 다른 대우입니다.

입다가 그들의 말이 진정인지를 재차 묻자, 길르앗 방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 사이의 증인이시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입다도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11절에 보면, 입다는 방백들과 나눈 모든 대화를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이들 사이에서 침묵하신다는 것입니다.

길르앗 방백들도, 입다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지만, 아직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들끼리 하나님을 입에 올리며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래에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 여기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왜곡된 신앙의 모습이 길르앗 방백과 입다의 모습에서 발견됩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까지인데,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서 그 입에서는 하나님을 거론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행위가 우리 안에는 없는지를 성찰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도구가 되는 현장이 우리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나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님이시오, 우리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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