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절까지는 입다가 암몬 왕에게 침략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암몬 왕이 그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고, 전쟁을 치르기로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으니 이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입다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신뢰하고 전쟁에 임하면 되었는데, 갑자기 전쟁이 임박한 시점에서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신다면 승전 후 돌아올 때에 자기 집 문 앞에서 자기를 영접하는 이를 여호와께 돌려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전쟁 직전에 서원을 했다는 것은 전쟁의 승리를 확실하게 보장받으려는 의도에서 일어난 행동입니다. 입다에게는 전쟁의 승패가 지도자가 되어 ‘길르앗의 중심이 되느냐’ 아니면 다시 ‘비류로 돌아가느냐’가 달린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승리를 이 서원으로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즉 입다의 지금 서원은 서원에 무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 후 얻어질 보상에 더 무게를 둔 행위라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서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당근을 제시하여 승리를 확보해 두려는 듯한 행동이었기에 이 서원은 하나님께서 기뻐할 만한 서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입다가 집에서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서원을 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왜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말한 것일까요? 이것은 다른 것으로 해석되기가 어렵고, 입다가 주변 가나안 부족들의 인신제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았던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전쟁이 치러졌고 승리는 입다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암몬족속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그를 영접하러 나온 이는 바로 입다의 무남독녀였습니다. ㄱ딸을 본 입다가 자기 옷을 찢으며 탄식합니다. 승리의 기쁨은 한순간에 사라졌고, 입다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버립니다.

입다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딸은 두 달을 슬퍼하는 기간으로 삼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후 입다는 딸을 번제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잘못한 서원은 취소해도 되는 것인데, 입다나 다른 이들은 왜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요?

이 모습은 율법을 알지 못한 채 오랜 시간 가나안의 종교와 섞여 살아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 시대의 암울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하나님은 왜 인신제사를 막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답이 없습니다만, 그 시대의 부패한 신앙양상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입다의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이면서, 부패한 신앙,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병든 신앙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아프게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잘 알아가는 것은 우리 삶의 행복과도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수박 겉핥기같은 앎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씀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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