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을 잡아온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은 것을 그들의 우상에게 감사하는 것을 보면, 이 모임은 삼손을 잡은 것을 기념하는 잔치자리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삼손의 실패, 삼손의 추락은 블레셋의 기쁨, 잔치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보기 위해 신전 가득히 모였습니다.

삼손을 잡아온 이들은 삼손에게 더 큰 수치심을 주고자 신전에 모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로 제공하였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모두가 잘 보이는 신전의 중앙에 두고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삼손이 재주를 부릴수록 그들의 기쁨은 더욱 커졌습니다.

힘으로는 세상에 당할 자가 없었던 삼손이었으나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삼손의 모습은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신전 중앙에는 신전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삼손은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소년에게 중앙의 기둥을 만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기둥을 붙잡은 삼손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여 주사 내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게 해 주십시오.”

큰 수치심을 느끼며 재주를 부리지만, 삼손은 마지막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고 싶었습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삼손은 두 기둥을 붙잡고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중앙의 기둥이 무너지고, 신전의 지붕이 와르르 내려앉아버렸습니다.

2층에 있던 이들도 1층에 모였던 이들도 피할 사이도 없이 건물잔해에 깔려 죽었습니다. 물론 삼손도 함께 죽었습니다. 이 때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삼손이 생전에 죽인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의 삶은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비록 그가 생전에 죽였던 블레셋인들보다 마지막에 죽인 블레셋인들의 숫자가 많았지만, 죽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사로서, 나실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잃은 채 마지막까지 원수갚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삼손은 그리 바람직한 일꾼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기록한 성경의 언급에서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계속 살아 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은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불임의 집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태중에서부터 나실인으로 살았던 삼손, 역사상 가장 강한 힘을 소유한 사사였으나 그 삶은 하나님의 소명을 품은 이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단지 감정과 기분에 따라 블레셋인들을 죽였을뿐 그에게는 소명을 가진 자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힘만을 자랑할 뿐 삼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도 찾아볼 수 없고, 거룩한 나라 왕같은 제사장된 백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부족한 삼손을 사용하셔서 블레셋을 심판하셨습니다.

삼손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무엇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은 성도로서 내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도우심이 여러분에게도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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