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참으로 비극적이고, 비인격적이며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레위 사람 일행이 광장에 있는 것을 본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도 에브라임 산지 출신이었습니다. 노인은 그 일행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묻고는 그들을 광장에 놔둘 수가 없어 자기 집으로 데려가 하루 밤 묵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보고는 노인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레위사람을 내놓으라고 위협합니다. 22절에 ‘그와 관계하리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동성애를 짐작하게 하는 말인 것입니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기 위해 들어온 나그네 일행을 향해 환대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성관계를 맺겠다고 몰려든 성읍의 불량배들은 이방인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깜짝 놀랍니다. 나그네에게 그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그들에게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만류합니다. 그런데 그 노인의 다음 말은 참으로 경악할만한 내용이었습니다. 노인은 레위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불량배들에게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의 시집가지 않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주겠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의 말에도 불량배들이 듣지를 않자 레위인은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줍니다. 여인은 밤새 욕을 당하고 새벽녘에 놓이게 됩니다. 여인은 노인의 집까지 와서 쓰러지는데, 아침에 길을 떠나려고 하던 레위인이 문 앞에 쓰러진 아내를 발견하지만, 부축하지도 도와주지도 않고 ‘일어나 가자’라고만 말합니다. 아무 반응이 없자 죽은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의 시신을 나귀에 태워 집으로 온 후 그 시신을 12조각을 내어 각 지파에 보내 베냐민 사람들의 악행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일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큰 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레위인과 노인, 베냐민 불량배들의 생각과 삶 속에 깊이 스며든 악과 죄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베냐민 불량배들이 노인에게 한 요구를 보면, 창세기 19장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소돔성에서 롯이 손님들을 집으로 맞아들였을 때 그곳 사람들이 죄다 몰려와서 롯의 집에 들어온 손님들을 내어 놓으라고 롯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롯이 소돔 사람들에게 한 말도 이 노인의 말과 같습니다. 이 장면은 결국 당시 베냐민의 성읍이 소돔과 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살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나그네를 환대하지도 않고, 게다가 이방인들의 죄악인 동성애를  행하고 살던 일단의 악한 백성들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또한 롯과 같이 이 노인도 가나안 문화 속에 깊이 잠겨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레위인은 어떻습니까? 비록 첩이지만 자신의 여인이고 아내인데 그녀를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악한 짓입니다. 오히려 이 여인은 남편을 따라가지 말고 아버지의 집에서 그냥 머물러 사는 것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한 개인을 그저 욕망의 도구로만 여기고 있는 모습이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이토록 끔찍하고 잔인하고 악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이라고 해서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입양한 아이를 죽인 젊은 신앙인 부부, 자기 자식을 학대하다 죽인 신학대 교수의 끔찍한 이야기는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우린 사사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잘못 섬기고, 잘못 예배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괜히 터져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정직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시대가 살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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