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장 17~28절 9월 17일 금요일
삿20:17-28 276장
이스라엘 지파들의 제안을 거부한 베냐민지파는 이제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싸움에 능한 자들을 뽑아 전쟁준비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도 전쟁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파연맹이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수행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은 기정사실화하고 누가 먼저 올라가 베냐민 지파와 싸울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사사기 1장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가나안 정복전쟁을 어느 지파가 앞장서서 수행할 것인지를 물었던 장면과 비슷합니다. 사사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다가 올라가라고 응답하셨고, 가나안 부족들을 그들 손에 넘겨주었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응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유다가 먼저다. 유다가 시작이다’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올라가라, 싸워라, 네 손에 넘겨주었다’는 언급이 없으십니다. 즉 싸움의 승패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승리하고 이스라엘 지파에서는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전쟁 전에도 또 묻습니다. 날이 저물도록 울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올라가라고 답하셨습니다. ‘치라’는 말은 원문에는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전투에서도 이스라엘이 크게 패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지파들이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내 형제 베냐민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앞의 두 번의 기도에는 싸움을 기정사실화하고 물었다면, 세 번째에서는 베냐민과의 전쟁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드린 기도였습니다.
앞의 두 번이 기도는 전쟁하기로 자신들이 이미 결정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승리를 가져다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이라면, 세 번째는 전쟁 자체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도 이같은 기도를 드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미 내가 다 결정한 후에 그 결정에 대해 하나님은 복으로, 형통으로 채워주시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주님으로 여기는 기도가 아니라 심부름꾼처럼 여기는 기도입니다.
일 자체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의 패배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두 번의 실패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각성시키시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사실 영적 타락은 베냐민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파들의 태도는 베냐민 지파의 드러난 악행에 대해서만 분노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파들이 보이는 자세는 ‘나는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야. 그러니 내가 저들을 정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괜찮지’라는 자세를 보입니다. 그래서 자칫 심판자의 마음자세로 잘못한 사람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심판자가 될 수도 없고, 심판자의 자리에 앉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의 이스라엘 지파의 패배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3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라고 되어 36절에는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문장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베냐민을 치셨고, 베냐민이 패한 것은 하나님 때문임을 성경은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죄악을 징계하신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의 문제를 해결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현실 앞에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하지 말고 늘 겸허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늘 승리하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