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합니다.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어제 본문 1:22-26에서는 요셉 지파가 벧엘을 공격하기에 앞서 그곳 주민 한 사람을 붙잡고 비밀 통로를 알려주면 선대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선대’라는 말은 ‘헤쎄드’를 번역한 말인데, 이 ‘헤쎄드’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변함없이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셉 지파의 정탐꾼이 벧엘 성읍 사람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몇몇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을 다 몰아내지 않고 노역을 시켰다는 말은 그들을 살려주는 대신 노역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사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책망 자체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그들이 이스라엘을 찌르는 가시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백성들을 책망하기 위해 어디서 올라옵니까?  ‘길갈’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하나님은 가나안 부족들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굉장히 위태로운 결정일 수도 있었지만, 여호수아는 그 명령에 순종하여 전쟁을 수행할 군사들을 포함하여 온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만약 가나안 부족들이 공격해 왔다면 이스라엘은 큰 화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와 같은 위기적 상황에서도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했고, 유월절 절기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위협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길갈에서부터 올라와 이스라엘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때의 그 결단을 상기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다짐했던 신앙적 결단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깨우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책망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이 눈물이 자신들에게 닥칠 고난에 대한 두려움과 지난날의 행동을 후회하는 눈물이 아닌 진실한 회개의 눈물이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얻을 기회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6절 이하에는 여호수아를 언급하면서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기록하지만, 여호수아의 죽음 후에 출현한 새로운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 하셨던 요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에게 더욱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알리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가정과 이 교회와 나라의 미래를 밝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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