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어제 말씀드렸던 내용 중에도 있지만, 전력이 약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철병거 900대를 가진 시스라를 이길 수 있었는지 그 원인이 노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19절에 표현된 대로 가나안 왕은 이스라엘을 가볍게 무찌르고 전리품을 취할 생각에 들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대했던 전리품들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처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패배하게 된 원인은 기손강의 범람으로 인해 철병거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패배의 원인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존재에게 이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이를 해할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전쟁에서 어느 군대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과 동행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모압과 그들의 철병거는 힘을 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전리품을 어떻게 챙기겠습니까? 전리품은커녕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이렇게 직접 역사하시고 싸우셨는데, 이스라엘 민족 중에는 그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15-18절의 르우벤, 납달리, 길르앗, 아셀 지파 등이 그러했고, 오늘 23절의 메로스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거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이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고, 돕지도 않았습니다.

이방인인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모압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자기 장막으로 피해 도망왔을 때 그를 안심시킨 후 죽여 이스라엘을 도왔는데, 정작 같은 이스라엘 민족은 동족을 돕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야엘은 이방인이지만, 적의 장수를 죽였으니 그가 받을 복은 다른 여인들보다 클 수밖에 없습니다. 드보라는 24절 이하에서 야엘의 공로를 자세히 기록하고 그녀를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여인의 손에 시스라를 파실 것임이니라”(4:9)는 예언이 결국 성취된 것입니다.

적장을 죽이고 후대에 그 이름을 떨친 이는 사람은 바락이 아닌 야엘이 되었습니다. 바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아 결국 그에게 주어질 영광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분이 명하신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은 믿음이라는 파이프를 통해서입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딸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찾아온 회당장 야이로에게 하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것이엇습니다. 그 믿음이 승리와 치유, 회복과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믿음의 길과 불신의 길입니다. 여러분 모두, 믿음의 길을 가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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