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의 패잔병들을 소탕하기 위해 에브라임 산지 곳곳에 사자들을 보내 협력을 요청하자, 에브라임은 군사들을 동원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기드온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기드온의 지시를 잘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푸대접했다는 이유로 크게 다투었습니다. ‘크게 다투었다’는 뜻은 ‘거세게 따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거세게 따진 이유는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과 다투지 않고 그들의 전과가 자신이 올린 전과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달랬습니다.

이 사건은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의 세력화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스라엘 지파 간에 협력과 동역보다는 미묘한 시기와 갈등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이스라엘은 형제 지파들 간에도 세력 확장에 대한 경계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브라임을 달랜 기드온은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였습니다. 계속된 전투로 피곤하고 배도 고파 가는 길에 숙곳과 브누엘에 이르러 그들에게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고 있으니 식량을 좀 보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모두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분명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같은 이스라엘 동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드온에게 협력하지 않고 맙니다. 아마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미디안 왕이 기드온의 손에 잡힐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기드온을 도왔다가 후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미디안의 군대가 강하고 커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배고픈 기드온의 군사들에게 식량을 내어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지도자들은 결국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하는 결정을 내리고 맙니다.

당시 이스라엘 지파들 간에도 서로 돌보고 살피는 공동체성이 무너져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나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던 시기였습니다. ‘나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백성들의 마음 속 깊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공동체를 잇던 끈이 끊어집니다. 서로를 돌보고 살피는 일도 사라집니다. 오직 자신의 생존과 번영에 집중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그런 이기적 현상들이 나타날 때에는 그 공동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을 알아채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서로의 돌봄과 관심, 협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게 사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 개인으로 부르시기도 했지만, 공동체로, 교회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문제와 더불어 너의 삶의 문제까지도 우리의 관심사가 되도록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좌표 중의 하나입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