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끝으로 기드온과 그의 집안의 이야기가 막을 내립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아비멜렉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권한을 기드온에게만 허락하셨지만, 그의 아들들의 욕망으로 부정하게 세습되었습니다. 아직 왕이 세워지지 않던 시대에 권력의 세습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멜렉은 욕망에 사로잡혀 그의 형제들을 70명이나 죽이고 권력을 차지하였습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권력이 어떻게 막을 내리게 되는지 성경은 아비멜렉의 이야기로 아주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엘브릿 신전의 보루에 숨은 것을 알게 됩니다. 보루는 ‘은밀한 곳’을 의미하며, 새번역에서는 지하실로 번역했습니다. 신전의 은밀한 곳으로 숨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우상의 보호를 받으려 한 행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우상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게 됩니다.

아비멜렉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 와서 군사들에게도 똑같이 자리를 따라 나무를 베어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나무를 보루 입구에 놓고 불을 질렀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물리칠 때 자신이 하는 것을 따라 하라고 군사들에게 명령한 모습이나, 횃불로 미디안을 물리친 것처럼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행동을 따라 하는 모양새를 보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대적을 물리치고 백성을 살리는 일에 그리하였으나 그 아들은 대적이 아닌 백성을 죽이는데 아버지의 방식을 따라합니다.

방식만 같을 뿐, 그 의도나 행위는 전혀 아버지를 닮지 못하였습니다. 욕망을 따라 이루어진 세습된 권력은 이렇게 불의하고 악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끔찍하게도 보루 안에 있던 백성 천여명이 모두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자기가 원하는 힘을 얻고자 형제들을 죽인 아비멜렉은 자신을 배신한 세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잔인한 보복을 행하고 있습니다.

힘을 따라 살아가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일은 결코 하나님께 호의를 얻지 못하고, 결국 그 행위의 댓가로 심판을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세겜 사람들을 죽인 후 아비멜렉이 데베스를 공격합니다. 데베스는 세겜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므낫세 영역의 성읍이었는데, 그곳을 왜 공격했는지 모릅니다만, 아마 세력을 더 확장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뜻하지 않게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고 치명상을 입습니다. 여인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불명예를 얻을까봐 자기 부하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부탁하여 아비멜렉은 그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죽음을 본 군사들이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갔고 기드온 집안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56절과 57절에 성경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형제들을 죽인 죄에 대해, 그리고 세겜 사람들은 혈연관계로 얻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아비멜렉의 악행에 동조한 모든 악행에 대해 심판하셨습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세겜의 행동에 대해서도 모든 악행이라고 여기시고 심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악을 직접 행한 것은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지만, 악을 방조하거나 도운 것도 심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축복 안에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권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익이 아닌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각 가정이 존귀한 믿음의 가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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