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장 11~24절 4월 5일 화요일
오늘 본문은 유대의 대적자들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공사를 방해하기 위해 아닥사스다 왕에게 서신을 보내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아닥사스다라는 이름은 느헤미야 시대에 나오는 이름인데 여기서도 등장하는 것이 헷갈릴 수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아닥사스다에 대해 일부의 주석가들은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 2세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때의 아닥사스다는 에스더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앞의 이야기에 연결된 이야기이면서 쟁점이 바뀌는 특징이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성전 공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다가 갑자기 성벽 공사 이야기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대적자들이 성전공사가 아닌 성벽 공사라는 것을 쟁점화하여 유대인들의 성전 공사를 방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대적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성전 공사를 이유로 훼방하는 것보다는 유대인들이 성읍을 재건하려고 한다는 논리를 펴야 공사를 중단하게 하는 데 더 용이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성벽공사나 성읍 재건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일부의 재건 공사가 시도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유대인들의 중점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적자들도 고레스 왕의 칙령에 성전을 건축을 허락한다는 조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이유로는 유대인들을 방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공사보다는 성벽공사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성벽을 건축한다는 것은 성전 건축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성벽을 공사한다는 것은 도시를 재건한다는 의미이고, 도시의 재건은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반역의 기미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성벽 건축은 적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페르시아 왕궁의 주의를 끌만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15절과 19절에서 대적자들은 예루살렘이 지난 역사에서 보여준 행태가 패역과 반역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유대인들이 위험한 족속이라는 편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모함과 중상이지만, 유대인들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데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벽을 완공하게 된다면 반드시 또 반역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불안감을 심어줄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의 거짓 모함이 성공하여 아닥사스다의 공사 중단 명령이 떨어지게 되고 그 다음 왕인 다리오 왕 때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성전공사가 중단되고 맙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뉴스는 아주 위력이 큽니다. 나중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그 대상은 이미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거짓은 특별히 사탄이 성도들을 무너지게 하기 위해 즐겨 쓰는 도구입니다.
성전공사가 중단되었으니 거짓을 무기로 삼은 대적자들은 자신들이 승리햇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유대인들이 승리합니다. 당장의 현실에서 거짓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진리가 드러나고 성전은 완공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참으로 많은 거짓들이 존재합니다. 정말 어느 것이 맞는 이야기인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들에 집중하면 우리 삶이 하나님께 집중하기 어려워집니다. 성도는 결국 진리 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라도 나를 둘러싼 거짓과 가짜뉴스가 있다 하더라도 진리 안에서 인내하다 보면 성령은 반드시 참과 거짓을 드러내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가 결국 이겨내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진리되신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꼭 그와 같은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