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수요일 QT


어떤 분의 글에 한자어 牛嚼鯨呑(우작경탄)이란 말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우작은 소의 되새김질을 의미하고, 경탄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 새우나 물을 삼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독서를 예로 들어, 우작을 책을 정독해서 읽는 것으로, 경탄을 다독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글은 넓게도 읽고, 되새김질 하며 깊게도 읽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그러합니다. 다독도 필요하고, 정독도 필요합니다.

새벽마다 읽는 말씀은 우작(牛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식으로 묵상이나 QT라고 할 수 있죠. 계속 읊조리며 말씀을 되뇌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말씀이 내 안에서 소화가 됩니다.

오늘 모세가 전하는 29장의 말씀도 지난날 맺은 언약을 되새김하는 과정입니다. 아직은 영적으로 깨달음이 미숙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더 강조하여 당부하고자 하는 모세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9절까지 모세는 옛 일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끄신 광야의 여정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를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언약에 순종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요청에 응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늘 말씀에 그 대상이 기록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과 남자들, 유아들, 아내와 이스라엘 중에 머무는 외국인 노동자들, 나무 긷는 종들까지 모두가 언약의 대상자들임을 밝힙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오늘 모세 앞에 서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오늘 그 자리에 서 있지 아니한 백성들 즉 장래의 후손들에게까지 이 언약은 효력을 발휘하며, 그들까지 언약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누구든지 언약의 당사자들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13절에 보면 그렇게 언약으로 세워진 백성들을 ‘자기 백성’이란 말로 표현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땅에 거주하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모두 한 공동체로 여기고 그들과 동고동락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긴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가 언약을 깨뜨리는 가장 위험한 요소입니다. 18절에 따르면 우상숭배는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초와 쑥뿌리 같은 것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만족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자기 뜻을 이루려고, 자기만족을 얻으려고 하나님의 뜻을 내려놓는 삶으로 변질되게 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래서 언약이 파기되게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만족하게 하는 삶에 기울면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스스로 제 마음에 축복하며 ‘내가 이렇게 죄 가운데 있어도 결국 내게 평안이 주어질거야’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결코 그와 같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게 되면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지, 거기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축복한다고 평안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평안과 축복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인데, 죄 가운에는 오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기 위안으로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죄는 단호히 끊어버리고, 언약의 말씀 안에 신실하게 응답하며 사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말고 기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기쁨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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