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금요일 QT


오늘 말씀은 미래적 소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이스라엘이 품을 수 있는 희망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재앙과 고난의 때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오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죽을 길에서 생명을 얻고, 고난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는 것을 힘주어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고 있노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 늦은 때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고난의 현장에서 오늘의 말씀을 기억해내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중요한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슈브’라는 단어인데, ‘돌아오다, 돌아가다, 돌이키다, 회복하다, 되돌려놓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 ‘회개한다’고 할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1,2,3,8,9절에 각각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 1절에는 ‘돌아오다’라는 단어가 없죠. 어디에 쓰였는가 하면, 1절 마지막에 ‘기억이 나거든’이란 말이 있는데, 거기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부분을 ‘이 말들이 돌아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말씀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읽었던 말씀, 들은 말씀, 은혜 받았던 말씀들이 우리 마음에서 다시 살아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가끔 과거에 은혜 받았던 말씀, 나를 회복시켜 주었던 말씀이 다시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고난의 자리, 재앙의 현장에서 그 말씀들이 생각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모세가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돌아오면’, 2절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여호와께로 돌아와..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사랑하시고,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할례는 언약의 증표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베푸신다는 것은 돌이키는 백성에게 다시 언약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회복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보면, 탕자가 뉘우치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탕자를 아버지가 안아주고 가락지를 껴 줍니다. 만약 아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아버지가 안아주시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온 마음과 뜻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받아주실지 받아주시지 않으실지는 그분의 권한입니다. 우린 전적으로 그분의 긍휼을 바라며 돌아갈 뿐인 거죠. 그런데 신명기가 전하는 하나님, 모세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언제든 이스라엘을 안아주실 하나님이라고 전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율법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 크다는 것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가 돌이키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앞에 와 계십니다. 돌이키기 전에는 그 은혜를 경험하지 못할 뿐이지 이미 하나님의 은혜는 저와 여러분 발 앞에 와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노력과 행동보다 앞서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율법도 은총이요, 저주의 선언도 은총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기로 다짐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고 그분의 복을 얻어 살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은총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 귀와 마음을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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